내가 날 사랑하지 않는데, 누가 날 사랑하겠어
'그땐 참 어렸지' 싶은 순간이 있다. 20대의 나는 꿈에 대한 포부, 연애에 대한 고집, 직장인에 대한 동경, 결혼에 대한 환상까지...지금 생각해보면 참 시야가 좁았다. 한편으론 철없던 그때가 그립기도 하다. 그런 어린 생각들은 그 나이였기에 가능한 것이고 그때만 할 수 있는 특권 같은 것이다. 20대를 지나 30대 중반을 향해가는 지금. 또 다른 십 년 뒤, '그땐 그랬지...'라며 지금의 나를 회상하기 위해 이 글을 쓴다.
20대 초반에는 이별 후에 클럽에 가는 걸로 실연을 잠시 잊곤 했다. 같이 가는 친구들에게는 "그냥, 시끄러운 음악 듣다 보면 아무 생각 안 나서 좋아!"라고 쿨하게 말했지만 사실은 쉽게 쉽게 접근하는 이성들을 보면서 "그래, 난 아직 죽지 않았어", "난 아직도 매력적이야"라는 위안을 얻고 싶었던 것 같다.
"네가 틀렸어!", "넌 정말 이상해", "이해할 수 없어"
연애하는 동안 수없이 다투고 상처받고 나도 상대를 할퀸다. 서로를 비난함으로써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해내고야 만다. 그렇게 땅에 떨어진 자존감을 클럽에서 내 겉치장만 보고 다가오는 낯선 이들에게서 채우려 했던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다른 사람에게서 내 자존감을 채우려 할수록 공허함만 더욱 커졌다.
20대 초반에는 이별 후에 상처받은 마음을 어떻게 치유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럽기만 했다. 난 너무 힘든데, 주변 사람들이 하는 말이라곤 "시간이 해결해 줄거야", "똥차 가고 벤츠 올 거야" 같은 관념적인 말 뿐이었다. 가만히 집에 있자니 헤어진 그가 자꾸 생각나고, 후회도 되고 우울하기도 하고. 그래서 현실을 도피하고 싶은 마음에 선택했던 게 클럽이라는 일탈이었다. 그때의 나를 생각하면 참 안쓰럽다.
자존감(self-esteem)
자신에 대한 존엄성이 타인들의 외적인 인정이나 칭찬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신 내부의 성숙된 사고와 가치에 의해 얻어지는 개인의 의식을 말한다.
by 네이버 지식백과
애초에 자존감은 다른 사람에게서 채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자존감은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마음이다. 남보다 내가 어떤 부분에서 우월하기 때문에 나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무언가 성과를 이루었기 때문에 자랑스러워하는 마음도 아니다. 그저 내가 나이기 때문에, 이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자존감이다.
자존감이 낮은 상태에선, 누군가 아무리 내가 매력적이고 소중한 존재라고 말해줘도 믿지 않는다. 내가 의지했던 사람이 날 떠나가면 내 인생이 끝난 것 마냥 상실감에 괴로워한다. "내가 또다시 사랑받을 수 있을까", "내가 또 이만큼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라며 스스로의 가치를 의심하고 미래를 암울하게만 내다본다.
자존감이 낮았던 내가 이 악순환을 끊기 위해 했던 첫 번째 노력은 일단 내가 나를 돌보는 것이다. "자존감을 높여야지!"라는 목적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어느 날은 문득 이별의 원인을 자신에 찾고 끊임없이 자책하며 괴로워하는 내가 너무 불쌍하게 느껴졌다. 이별 자체에 매몰돼 우울하고 슬픈 감정에 허우적거리는 것을 그만하기로 마음먹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규칙적인 생활하기, 친구들 모임에 빠지지 말고 나가기, 과제 열심히 하기, 새로운 취미 만들기, 배우고 싶었던 학원 다니기 등 작은 일상부터 하나씩 되찾기 시작했다.
서른 살 즈음,
이별 후에 더 이상 클럽에 가지 않게 됐다.
그 보다 더 가치 있게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터득했다. 그동안 미뤄뒀던 취미생활도 도전해보고, 가고 싶었던 카페에 가서 책도 읽고 운동도 한다. 이별 전보다 더욱 부지런을 떨며 방 청소를 하고 일기를 쓰며 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나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을 만나 힐링의 시간을 갖는다. 그들은 내가 얼마나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함께 있는 매 순간 상기시켜 준다.
이별을 극복하는 방법을 터득한 후부터 사랑과 이별에 많은 에너지를 쏟지 않게 됐다. 사랑에 열정을 잃은 것은 아니다. 어릴 땐 내 일상의 전부를 상대에게 맞췄던 반면, 지금은 내 일상의 한 부분만 연인에게 내어준다. 항상 연인에게 향해있던 안테나를 나의 일상에 초점 맞추고 집중하다가 연인을 만나면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사랑한다. 실연을 겪더라도 며칠은 상실감에 서글프고 떠나간 그가 그립기도 하겠지만, 이내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올 수 있다. 마음의 기초체력이 길러지는 과정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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