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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난 20대에 결혼하는 게 꿈이었어

한다엘 2021. 8. 14. 23:07

결혼이 무슨 애들 장난도 아니고...

'그땐 참 어렸지' 싶은 순간이 있다. 20대의 나는 꿈에 대한 포부, 연애에 대한 고집, 직장인에 대한 동경, 결혼에 대한 환상까지...지금 생각해보면 참 시야가 좁았다. 한편으론 철없던 그때가 그립기도 하다. 그런 어린 생각들은 그 나이였기에 가능한 것이고 그때만 할 수 있는 특권 같은 것이다. 20대를 지나 30대 중반을 향해가는 지금. 또 다른 십 년 뒤, '그땐 그랬지...'라며 지금의 나를 회상하기 위해 이 글을 씁니다.

 

난 일찍 결혼하고 싶어.

 

 이제 갓 청소년 티를 벗은 20대 초반, 결혼 주제로 대화가 흘러가면 꼭 했던 말이었다. 그때는 제대로 된 연애를 해보지 못했던 터라 한 사람과 오래 연애했다가 결혼까지 이어진 과 선배의 전설 같은 연애담이 대단해 보였다. 초중고, 대학교까지 공부만 하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결혼했다는 어떤 선배를 동경했었다. 그땐 첫사랑과 만나 별 탈 없이 오래 사귀고 결혼까지 하는 게 연애의 정석인 줄 알았다.(물론, 풍파 없이 오래 잘 만나는 커플은 지금도 부럽다.) 2000년대 초반 대부분의 로맨스 드라마가 결혼이라는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린 것도 나에게 큰 영향을 준 것 같다. 결혼은 '다사다난했던 청춘의 끝, 어른들의 안정적인 행복 시작'이라는 공식이 내 머릿속에 심어졌다.

 

요즘 같은 때에 결혼이 어디 쉽나사회적으로 결혼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책임과 기대, 경제적 부담 때문에 결혼 생각 없이 연애만 하는 남녀가 많다. 결혼하더라도 출산은 또 다른 이야기다. 아이 없이 부부끼리만 행복하게 살아가는 딩크족도 주변에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취집이 어디 흔한가.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 이유뿐 아니라 자기 만족감, 자기 효능감을 위해 결혼, 출산, 육아 이후에도 자기 일은 꼭 지키려 한다. 대학생 때부터 동아리니, 인턴십이니, 어학연수니 하며 스펙 쌓기에 열을 올렸던 나는 당연하게도 졸업과 동시에 일자리를 구했고, 지금은 내가 답답해서 취집은 꿈도 못 꾼다. 나 같은 사람이 많아서인지 '취집(취직+시집)'이란 말도 요즘은 쓰지 않는 것 같다. 

 

 '일찍 결혼하고 싶다'라니,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코웃음 칠 말이다. 좋은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는 것도 아니고,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과 하고 싶다는 것도 아닌, 그냥 '일찍' 하겠다니. 인생의 동반자를 찾는 일인데, 심사숙고하고 오래도록 고민해서 하겠다 해도 모자랄 판에, 일찍? 20대 때의 나에게 돌아가 정신 차리라며 '세상이 뭐 그리 호락호락한 줄 아냐'며 뒤통수라도 한 대 때려줘야 하겠지만 다행스럽게도 나는 20대 때 결혼하지 않았다. 

 

 어찌어찌 바쁘게 살다 보니 20대 후반에 직장엘 들어갔고 밤, 새벽, 주말 할 것 없이 영혼을 갈아 넣어 일하다 보니 30대 초반이 되었다. 어쩌면 20대 때 만났던 뭔가 하나씩 부족했던 남자 친구들(나도 부족했다) 중 한 명과 결혼했을 수도 있겠다는 상상을 하면 지금도 아찔해진다.  

 

 그때는 결혼을 현재의 불행한 상황을 벗어나게 해주는 수단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불화가 끊이질 않았던 가족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대학생 때는 경제적으로 부모님께 의지하고 있던 탓에 독립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그 바람은 내 손으로 돈을 벌기 시작하자 너무나도 쉽게 이뤄졌다. 작지만 내가 직접 얻은 원룸, 빠듯해도 조금씩 필요한 살림살이를 장만하며 얻는 소소한 행복, 오롯이 내 의지로 채워가는 자유로운 일상... 그렇게 결혼 생각은 차츰 바쁜 일상 뒤편으로 밀려났다.

 

그리고 하나, 둘 결혼하는 친구들을 보며, 또 그중 일부는 다시 싱글로 돌아오는 걸 보며 깨달았다. 결혼이 인생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걸. 그 시작이 아름다운 꽃길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걸. 발이 푹푹 빠지는 진흙탕을 걷더라도 이제 옆에 있는 그 사람과 함께 걸어야 한다는 걸. 그래도 사람들이 결혼을 하는 이유는 비록 진흙탕일지라도 혼자가 아닌 둘이어서 다행인, 서로의 존재 자체가 위안이 되는 내 편이 생겨서라는 걸.

 

 '일찍 결혼하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하며 오늘도 가슴을 쓸어내린다. 

 

 결혼을 단순히 '현실도피'로 생각했던 나. 목표했던 대로 20대 후반에 결혼했다면 어땠을까. 꽁냥꽁냥 행복한 신혼은 잠시, 생활패턴이 다른 상대와 마찰이 있을 때면 '싱글일 때보다 더 불행해졌다'며 실망했을 것이고, 준비되지 않은 채로 엄마가 되고선 ‘내 삶이 없어졌다’며 무기력해졌을 것 같다. 

 

 결혼에 대한 환상이 없을 때 결혼하게 되어 참 다행이다.